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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새 소설집 ‘툰드라’ 펴낸 강석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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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애경 작성일23-02-27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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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에 걸친 생의 상징 같은 8편의 단편 수록
한국 문학사에서 새로 개척해낸 영토, '툰드라'
욕망을 거듭 깨뜨리는 가멸(加滅)의 구도 거친 35년간 소설들
세계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염결과 세속 직시하는 ‘길항(拮抗)’이 핵심
경주시민으로 산 지 30년, 경주 모티브로 한 작품도 실려

 
                                                                                                                                          강석경 작가가 37년만에 세번째 신작 소설집 ‘툰드라’를 냈다. 이미지 제공 도서출판 '강'.

“수 만 년 거쳐온 동토 ‘툰드라’가 인류학적 행적 같은, 어떤 생의 상징 같이 다가왔다. 소설집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인 실존으로서의 툰드라였다”

 

강석경(72) 작가가 37년만에 세번째 신작 소설집 ‘툰드라(도서출판 강)’를 냈다.

 

자기를 찾아가는 구도의 길을 걷는 예술가와 ‘도덕의 홍위병’에 저항하는 열정을 작품에 녹여왔던 그가 응축해낸 새 소설집이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도서출판 ‘강’은 ‘힘 없는’ 작은 출판사였다.

 
경주 황리단길 초입, 능들의 선이 레이어드로 겹쳐 경주가 신라의 땅이었음을 전망할 수 있는 한 카페에서 24일 오후 강석경 작가를 만났다.

 

어느새 사위가 어둑해지고 카페 안이 고요하게 진정될 즈음 인터뷰는 끝이 났다. 해가 지고 있는 능선을 더 바라보고 싶다는 작가를 홀로 남겨두고 나왔다. 그가 바로 우리 지척에서 경주시민으로 30년을 살았다.

경주와 인도 너머 중국과 몽골에 이르기까지 아시아 곳곳을 두루 어우르다 마침내 그가 발견한 툰드라. 소설집 툰드라는 ‘가까운 골짜기’, ‘신성한 봄’ 등 장편소설로 꾸준히 독자들을 만나왔지만 1986년 ‘숲속의 방’ 이후 37년 만에 내놓은, 작가의 말대로라면 단편집으로선 ‘마지막 출간’일 작품집이다.

 

                                                                                                                                          소설집 '툰드라'는 1987년 발표한 ‘석양꽃’부터 2022년 ‘툰드라’까지 35년간에 걸쳐 집필한 단편소설 여덟 편을 묶었다.
                                                                            1987년 발표한 ‘석양꽃’부터 2001년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2013년 ‘발 없는 새’, 2018년 ‘가멸사’, 지난해 2022년 ‘툰드라’까지 35년간에 걸쳐 드문드문 집필한 여덟 편을 묶었다.

 
호흡 긴 장편소설을 선호해 1987년 단편 석양꽃을 발표한 뒤, 14년간 쓰지 않다가 2000년 이후부터 쓴 단편들에, 지난해 발표한 툰드라를 포함해 여덟 편을 모았으니 과작이라는 평을 얻는다.

 

그러나 걸음의 속도가 느린 만큼 작가가 남기는 발자국은 깊다. 결백하리만치 자기 보폭을 지키며 언제나 최상의 언어를 선보이려고 노력해온 작가의 모습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그는 “체질적 과작인 것 같다. 글을 쓰지 않는 공백기엔 거의 폐인이 된 듯한 무력감이 든다. 그러나 지금까지 글쓰기가 가능한 건 응축돼 있다가 쓰는 과작이었으니까 가능했던 것 같다”고 했다.

 
신작 소설집인 툰드라의 장엄하고 기나긴 길은 실존 그 자체다. 표제작으로 뽑은 툰드라는 허연 시인의 잠언 같은 시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2014년 몽골 여행에서의 깨달음이 배경이다.

 
강 작가는 “툰드라는 지난해 여름 영감을 주는 방 ‘예버덩’에서 집필했다. 홍상수 감독과 배우 김민희를 모티브로 삼아 그들을 질타하는 ‘도덕의 홍위병’에 진저리치며 썼다. 집필 당시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듯 써졌다”고 말했다.

 

 작가의 툰드라는 한국 문학사에서 새로 개척해낸 영토에 다름없다. 속세를 함부로 초월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고요히 거듭 멸하는 자의 품격이 도달한 자리다.

 
이번 소설집에서 두드러지는 반복된 핵심은, 세계에 일절 편승하지 않으려는 염결함과 세속을 직시하며 머무려르는 ‘길항(拮抗)’이다.

 

여기서, 툰드라는 어쩔 수 없이 1980년대 청춘의 고통스러운 자아 탐색이자 집단성의 횡포와 집요한 관성을 상기시켰던 오랜 단편작 ‘숲속의 방’의 ‘소양’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다.

 
작가는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이중의 시선으로 균형을 잡으면서도 우리에게 익숙한 관례적 삶이란 얼마나 얇고 납작하며 투명한지를 고발한다.

 

세상의 도덕과 인습에 맞춰 틀 지워진 삶은 단 하나의 일탈적 삶도 지탱하지 못한다. 여기서 독자들은 위악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고뇌를 죽음에 이르기까지 밀어붙인 소양에 기울고 매료됐었다.

 
마침내 툰드라에 이르러선, 작가의 세상에 대한 비판이 더욱 매섭고 도저해진다. 문장의 밀도와 세계에 대한 인식에서는 옹골찬 근력마저 느껴진다.

 
소설가 이성아는 “중산층의 속물적인 가치와 가족주의에 대한 혐오와 절망이 소양을 자살로 몰았다면, 툰드라의 돌마와 소담, 수랭, 작드더러즈, 그리고 주영은 국가와 제도의 기만, ‘도덕 하는 사람들’에 맞서는 길을 선택한다”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의 책이 “사랑이나 연애에 관한 소설이 아니라 사회 소설로 읽히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작품집에서의 35년은 해탈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오가며 견뎠던 작가의 무수한 번뇌가 담겨 있다. 세속에 진저리치며 저 멀리 바깥으로의 떠남을 꿈꾸는 자들은 이번 소설집에서도 여전히 등장한다.

 

소설 ‘석양꽃’에서의 충분히 가닿지 못했을 깨달음은 ‘툰드라’ 몽골의 한 고원 위에 이르자 “해탈이 거기 있었다”는 문장과 함께 도달한다.

 
소설 ‘석양꽃’은 불교의 교리와 세속의 시선이 정면충돌하면서도 비스듬히 겹쳐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의선이 속인의 편에서 자조의 말을 길게 꺼내는 순간이 핵심 장면으로,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진정한 구원이란 없어요. 전 어리석게 피 흘리더라도 세속에서 부대끼며 살고 죄일지라도 사랑하고 그 대가로 고통도 삼킬 겁니다”로 요약된다.

 
이어, 인간의 맨얼굴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자리에 ‘가멸사’가 놓인다. 강지희 문학평론가는 “상징적인 이미지를 촘촘히 활용하고 있는 유기적인 구성과 종교에 대한 더욱 깊고 치열한 성찰은 작가의 소설 세계 안에서 계속 거론될 만한 명편”이라고 평한다.

 

이 작품은 경주 무장사지를 향해 가는 등산길에서 나누는 대화로 이루어진 여로형 소설이다.

2001년 작품인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는 마지막에 이르러 인물의 절망을 높은 밀도로 그려내며 신화적 도약을 이뤄내고 있다. 이 소설은 최신작 툰드라와 겹쳐 읽을 때 비로소 더 깊은 이해가 가능하다.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의 남자가 멈추고 수장된 그 자리에서 툰드라는 여자의 시선으로 다시 시작되는 것이다.

세속의 삶에 결코 길들여지지 않으려는 작가 강석경의 날짐승 같은 감각은, 욕망을 거듭 깨뜨리는 가멸(加滅)의 구도를 거치며 여기까지 왔다.

 

                                                                                                                                          24일, 경주 황리단길 초입의 한 카페에서 강석경 작가를 만났다. 오세윤 문화재전문사진작가 사진 촬영과 제공.                                                                          한편, 이번 소설집에서도 그러하듯, 작가는 경주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더러 구현했다.

 

“가령, 단편 ‘나는 너무 멀리 왔을까’, 장편 ‘내 안의 깊은 계단’, 단편 ‘가멸사’, 역사산문집 ‘능으로 가는길’ 등의 집필은 경주 온 보람이자 성과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은 경주에 살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이다”

 
인터뷰 말미 즈음에 작가는 “인도 여행에서 사람은 깨닫기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깨닫기 위해 살고, 글도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쓰는 거다.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 했다.

 
그러면서 ”문학 역시 자기 구도이고 깨달음에 대한 여정이다. 나의 데뷔작인 ‘빨간 넥타이’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려졌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 주제로 관통하고 있다. 아마 모든 작가들의 첫 시작은 자신의 정체성 찾기일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작가 이문열의 표현처럼 언제나 ‘치열한 영혼’의 소유자다. ‘적색보다 더 높은 온도로 타오르는 푸른 불꽃’이고 그래서 ‘절대 꺼지지 않는 불씨를 유지’하고 있었다.
선애경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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