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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장’ 윤말걸 선생, 경북 무형문화재 제49호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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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애경 작성일23-02-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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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된 작업이었지만 자긍심 가지고 매진해온 결과라 기쁩니다”
50년간 석공으로서 국보, 보물 등 해체와 보수, 복원, 정비 도맡아
석재 가공기술, 뛰어난 ‘드잡이’ 기술로 문화재 보수, 복원한 공로 인정
경주 남산의 온전한 문화재, 대부분 그의 손 거쳐

                                                                          ‘경주 석장’ 윤만걸 선생이 16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9호로 지정고시됐다. 사진은 분황사 석사자 복원 모습.
경주 남산동에 사는 석공의 1인자, 윤만걸(68) 선생이 16일,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49호 ‘경주 석장’으로 지정고시됐다.

 
경주시 남산동에서 운영하는 종합석재창조사 공방 대표기도 한 선생이 전승자인 두 아들과 함께 숭고한 기도와 엄혹한 기술로 문화재를 복원하며 쏘아 올린 쾌거다.

 
1995년 경북 최초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에서 거듭난 이번 선정은, 석재 가공기술과 함께 석재를 쌓아올리는 기술인 한식진폴을 사용한 ‘드잡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선생의 뛰어난 기술과 그간의 문화재 보수, 복원과 재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경주시 남산동에서 운영하는 종합석재창조사 공방 대표기도 한 윤만걸 선생.
                                                                          ‘드잡이’는 기울거나 내려앉은 건물을 해체하지 않고 그대로 작키·탕개(턴버클) 등을 써서 바로잡는 일로, 기둥이나 보 등의 큰 부재를 들어 맞추는 일이다. 이제 그 기술이 후대에 전승돼야 할 과제를 남겨두었다.

 
현재 문화재수리기능자인 윤동천(쌓기석공, 드잡이공), 윤동훈(한식석공, 드잡이공) 두 아들이 전수자로서 고스란히 이러한 기능들을 이어받고 있다.

 

선생은 문화재 수리기능사, 드잡이 기능자, 조경기능자, 석공예기능사, 석조각기능사 등 각종 석조부문 자격으로 1995년 경북 최초로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이 됐다. 몇 겹으로 굳은살이 박힌 명장의 손은 겸손하고 낮게 그간의 작업을 말없이 웅변한다.

 

                                                                                              문화재수리 표준품셈 정비사업 중, 진폴기둥(이마대) 목도를 운반하고 있다(제일 앞쪽이 윤만걸 선생).
                                                                          경주 남산의 대표적인 염불사지 쌍탑, 용장사지 3층석탑 해체복원, 천룡사지 3층석탑 등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돼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또 기암곡 3층석탑, 국사곡 3층석탑, 지바위곡 3층석탑, 늠비봉 5층 석탑, 남산의 석탑 등은 윤 명장의 손끝에서 다시 꽃을 피워 원형에 가깝게 재현된 걸작들로 손꼽힌다.

 

경주 남산에서 제대로 된 모습으로 온전하게 만나는 문화재는 모두 그의 손을 거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석조물 공사 전통 기법 실연을 하고 있는 모습. 3층 탑신을 들어 올리고 있다.
                                                                          이 밖에도 국보 제21호 불국사 삼층석탑을 1:1 크기로 복제 제작하고 삼층석탑을 드잡이 기술을 이용해 설치하는 장면을 재연해냈다. 각 국보, 보물, 유형문화재 등의 해체와 보수, 복원, 재연, 제작, 정비 등을 도맡아 온 것이다.

 

선생은 “지금은 석재 가공기술의 발전으로 석재를 다듬는 석공들은 많으나, 선대로부터 전해오고 있는 석재를 쌓아 올리는 기술인 한식진폴에 의한 드잡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석장은 매우 귀한 편입니다”고 했다.

 
뛰어난 석장은 단순히 돌을 다듬는 것을 넘어 좋은 돌을 선별하고 석재의 재질과 색상 등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는 등 두루 석공 기술을 섭렵하고 석공들을 독려하며 공사를 전체 총괄해 마무리 할 수 있어야 한다. 게다가 석공들이 다듬은 석재를 쌓아 올리는 드잡이 기술도 보유하고 있어야 우수한 석장이라는 측면에서, 윤 명장은 진정한 석장인 것이다.

 
선생은 1954년 울산 출신으로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1969년 당시 16세때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석재사’에서 처음으로 석공 일을 접했으니 50년의 세월을 훌쩍 넘기며 석공으로 살았다.

 

전국 석공들이 모인 그곳 석재사에서 오영근 석장에게 석공기술, 드잡이 기술을 5년동안 사사받았다.

 

윤 명장은 “수련생활 중 시골에서 홀로 상경한 처지라, 고된 작업의 어려움보다 당시 석공기술이 제일 발전해있던 익산지역 석공들의 텃세가 힘들었던 것 같다”면서 “그래서 오히려 제 자신이 더욱 강인해지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고했다.

 
이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석공일과 드잡이일에 전념했다. 그러던 중 1980년 석조문화재의 야보고인 경주에 정착해 전국적 최고 명성을 자랑하던 수월 김만술 조각가에게 석조각 기술을 사사받기에 이른다.

또 신라문화동인회를 통해 ‘마지막 신라인’ 고청 윤경렬 선생을 만나면서 신라시대 석조문화재 특징, 탑의 시대와 가공방법 등 형식에 대해 배우게 된다.

 

 “그것들은 작품과의 교감으로 이어졌고 지금까지의 제 작업의 밑천이 됐지요. 두 스승은 일반 석공과는 차별성을 띠고 싶었던 제 작품의 정신적 지주가 됐습니다”

 
선생은 경주는 주로 남산 줄기에서 나는 돌로 제작하는 것이라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현재로는 재료 채취가 어렵다고 했다.

 

국립공원 외에라도 석재를 채취할 수 있도록 지정해 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후 월성복원이나 황룡사 복원, 읍성복원 등에 대비하자는 목소리였다.

 

공사 발주 뒤 경주의 석재를 구하지 못해 다른 지역 돌을 구해와야 한다면 ‘솜바지 입고 위에 양복을 입은 것’ 같이 어울리지 않으므로 동질의 재질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만걸 경주 석장이 전승자인 두 아들(윤동천(왼쪽), 윤동훈(오른쪽)과 나란히 섰다.                                                                            선생은 통일신라시대 석탑 보수 작업 이외에도 복원석공기술도 여러 작업에서 펼친 바 있다. 경주동부사적지내 월성해자, 석교 복원, 경남 양산 통도사 당간지주 복원, 공주서혈사지 석조여래좌상 이전, 충남 공주 마곡사 불모 금오당 대선사 부도탑비 조성, 초우 황수영, 수묵 진홍섭 박사 공덕추모비 제작 설치 등으로 매우 많다.

 
선생은 1995년 대한민국 석공예부문 명장 선정, 대통령, 행정자치부장관, 경북도지사, 문화재청장 등 다수 표창, 2010년 경주시문화상 문화부문 수상, 2013년 제18회 포항MBC·삼일문화대상 문화예술부문 등을 다수 수상했다.

 

                                                                                              염불사지 석탑복원.
                                                                          또 전국 돌조각경기대회 심사위원 위촉, 경북 기능경기대회 석공예 심사장, 전국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등 기능경기대회 심사 및 사회활동과 각종 교육에의 참여도 손에 꼽을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이번 선정에 대해 선생은 “그간의 작업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칩니다. 고된 작업이었지만 자긍심을 가지고 매진해온 결과라 기쁩니다”라면서 “대한민국 석장으로서 책임은 과중하나 혜택은 미흡한 편이어서 더욱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전수하고자 하는 후학들도 자긍심을 가지고 매진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의 복원 작업 위주에서, 머릿속에만 구상하고 있는 창조석물을 언젠가는 실행해 보고 싶다는 바람도 전했다.
선애경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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